About Wusuk K.

Curriculum Vitae Wusuk Kang – 2020 (pdf) – A password is required. If necessary, please contact the author(wusuk.kang@gmail.com).

Wusuk Kang is the founder and CEO of the A*, Inc. and N*, LLC. (U.S.), R* Inc. (South Korea), and N* S.L. (Spain). His companies develop and service database development and management tool-sets for database developers, administrators, and analysts. He served as the CTO of Internet Korea Corporation in 1994, the early days of the Internet in Korea, and contributed to Korea’s global Internet ecosystem as it is now.

Born in 1963 in South Korea, Wusuk Kang had an outstanding career in the film and media industry, including nonprofit organizations and academia, before becoming a full-fledged entrepreneur. In 1988, at the age of 25, he was a local chief of the progressive national daily newspaper and a company’s publisher that year. He founded the Seoul Cinema Club (1991), which helped over 2,500 members engage and participate in the Korean film industry. Cinema Journal (1992), Korea’s first weekly film newspaper, which Kang created in, published hundreds of thousands of copies each week, sparking a Korean film renaissance in the early 1990s. The Institute of Korea Film House (1993~2000), which he founded, provided film and animation workshops to over 2,000 children and youth across the country. He founded and ran seven international film festivals, including Korea’s first-ever, the Environmental Film Festival in 1994. His achievement in the film industry concluded after creating the world’s first online film festival in 2001. As a result, there are 38 various domestic or international film festivals every year in Korea.

Wusuk Kang was also passionate about nonprofit organizations, and in 1988, he created a cultural club for residents. He co-founded the 21st Century Frontier (1993~2008). Kang played a crucial role in laying the foundation of public debate and discourse with over 500 members; professors, lawyers, doctors, researchers, journalists, poets, and experts in various fields. Besides, he created the KAIST CEO Club (2001~2004), which discussed business ethics and corporate innovation with over 390 members, and served as the first and second president.

From 1995 to 2001, he worked primarily in academia. He taught film studies or film making at several schools, including the Graduate School of Media at Sogang University. Kang was a visiting researcher at the Institute of Media Art of Yonsei University (1998-1999) and served on the board of directors (1998~2001) with the Korean Society for the Gifted and Talented. He also wrote film-related articles in several film weekly and monthly magazines, and in 1999 he published a paper about the Korean film industry.

In 2005, he had immigrated to the United States with his family and studied American Studies and International Relations at a university to further his understanding of American culture and history. He received his bachelor’s degree in August 2011 and graduated valedictorian. In 2015, he enrolled in Fairleigh Dickinson University to study the rapidly changing business environment and completed his coursework in 2017. He received the Petrocelli College Dean’s Award for Continuing Education as a graduate who has been working as a member of the Founder’s Society at Fairleigh Dickinson University since 2018 due to appoint from the President of the university.

As a lifelong learner, he has completed non-degree courses in some institutions from 1989 to 2020. In 1989, he finished Publishing College, Korea’s most prestigious track for editors and publishers. It ranked him 1st in the MBA course of KAIST (2001) and received the Distinguished Service Medal. In 2011, he completed coursework at the School of Professional Studies at New York University. Wusuk Kang has finished both Digital Marketing at Columbia Business School and Comparative Equality and Anti-Discrimination Law at Stanford Online in 2020.

Furthermore, he accepted a coop-course from “MIT Sloan School of Management & Columbia Business School Executive Education” recently via Emeritus. So Wusuk will start studying Digital Business soon and earn a Postgraduate Diploma from those two schools at once. Previously, Digital Marketing at Columbia University was also part of this course work.

Since December 2015, he runs a blog called “Life is a story,” based on various personal experiences. He has published over 700 articles so far. His writings range from travel essays to deep philosophical reflection. His hands cover a broad scope of topics, from literature, film, culture, education, parenting, photography, and even the future of artificial intelligence. He has scheduled to publish in the United States in English from 2021 in a series entitled “The Meaning of Living (Temporary Title),” centering on the articles published on his blog.

He classifies his life in Korea as the first stage. And his second stage is up to his induction as an American citizen in 2018. What will Wusuk Kang do in the third stage of his life? In fact, he is currently preparing for law school in the United States. As an immigrant, minority, passionate, and thoughtful global citizen, he aims to acquire a lawyer’s license to lead community service for the weak. That may be the starting point for the third phase of his life.


강우석의 영문판 프로필 – 2020 (pdf) – 패스워드가 필요합니다. 필요하시면 저자에게 연락하시기 바랍니다(wusuk.kang@gmail.com).

강우석은 A*, Inc.와 N*, LLC. (미국), R* Inc. (한국) 그리고 N* S.L. (스페인)의 창업자 겸 CEO이다. 그의 회사는 데이터베이스 개발자, 관리자 및 분석가를 위한 데이터베이스 개발 및 관리 도구 세트를 개발하고 서비스한다. 한국의 인터넷 보급 초기인 1994년에 인터넷 코리아 코퍼레이션의 CTO를 역임했으며, 현재처럼 한국이 세계적인 인터넷 생태계를 이루는 데 공헌했다.

1963년 한국에서 태어난 강우석은 본격적인 기업가가 되기 전, 비영리 단체와 학계 등 영화와 미디어 산업 분야에서 뛰어난 경력을 갖고 있었다. 그가 25세던 1988년, 한 진보적인 전국 일간지의 창간 지국장과 출판사 대표를 역임했다. 그는 서울시네마클럽(1991년)을 설립하여 2,500명이 넘는 회원들이 한국 영화 산업에 참여하고 공헌할 수 있도록 했다. 그가 창간에 참여한, 한국의 첫 주간 영화 신문 시네마저널(1992년)은 매주 수십만 부씩을 발행하면서 1990년대 초 한국 영화 르네상스를 촉발시켰다. 그가 설립한 영화연구소 코리아필름하우스(1993~2000년)는 전국의 2,000여 명이 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영화와 애니메이션 워크숍을 제공했으며 1994년 한국 최초의 환경 영화제를 비롯하여 7개의 국제 영화제를 설립하고 운영했다. 영화산업에서 그의 마지막 업적은 2001년에 세계 최초의 온라인 영화제를 창설한 것이다. 그런 결과로 한국에서는 매년 38개의 다양한 국내외 영화제가 열리고 있다.

강우석은 비영리 활동에 대한 열정이 매우 높았다. 1988년, 한 지역 주민을 위한 문화동아리를 만든 것이 시작이었다. 그는 21세기 프론티어(1993~2008) 창설에 참여하여 교수, 변호사, 의사, 연구원, 언론인, 시인 등 각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500여 명의 회원과 함께 공론화와 담론의 기반을 다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390명 이상의 회원들과 함께 기업 윤리와 기업 혁신을 논의하는 KAIST CEO 클럽(2001~2004)을 창설, 1~2대 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1995년부터 2001년의 기간에 주로 학계에서 일했다.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을 포함한 몇몇 학교에서 영화학이나 영화 제작을 가르쳤으며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1998~1999년)의 창설 객원 연구원과 한국영재학회에서 운영위원(1998~2001년)을 지냈다. 그는 또한 여러 영화 주간지와 월간지에 영화 관련 칼럼을 썼으며, 1999년에는 한국 영화 산업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강우석은 2005년에 가족과 함께 미국에 이민을 왔으며 미국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대학에서 미국학과 국제학을 공부했다. 2011년에 국제학사학위를 받고 최우수상(전체 수석)을 받으며 졸업했다. 2015년에는 급변하는 경영 환경을 연구하기 위해 페어리디킨슨대학교(FDU)에 등록해 2017년에 전 교과 과정을 마쳤다. 그는 2018년에 FDU 졸업생에게 수여 되는 영예의 페트로첼리칼리지 학장 상을 받았고 그해에 대학교 총장의 지명에 의해 FUD의 설립자위원회 멤버로 위촉되었다.

강우석은 평생 학습자로서 1989년부터 2020년까지 여러 기관에서 비학위 과정을 이수했다. 1989년에 그는 한국의 가장 권위 있는 출판·편집 코스인 출판대학을 마쳤으며 KAIST의 경영자과정(2001년)에서 1위로 수료함과 동시에 공로상을 받았다. 2011년에 뉴욕대학교 전문가 교육과정의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2020년에는 컬럼비아대학교 비즈니 스쿨(경영대학원)의 디지털마케팅스탠퍼드대학교 로스쿨의 평등과 반차별법 비교 과정을 각각 마쳤다. 그는 최근에 “MIT 경영대학원 Sloan컬럼비아대학교 비즈니스 스쿨“의 협업 프로그램인 디지털 비즈니스 과정에 합격했으며 학업을 마치면 두 대학원로부터 Postgraduate학위를 받게 된다. 그가 앞서 수료한 컬럼비아대학의 디지털마케팅도 이 클래스의 하나였다.

2015년 12월부터 ‘인생은 스토리다 Life is a Story‘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 블로그는 그의 다양한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700개가 넘는 글을 포스팅했으며 여행 에세이에서부터 깊은 철학적 성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의 글은 문학, 영화, 문화, 교육, 육아, 사진, 심지어 인공지능의 미래까지 폭넓은 주제를 다룬다. 블로그에 발표한 글을 중심으로 2021년부터 “산다는 것의 의미(가제)”라는 시리즈로 영어로 미국에서 발간할 예정이다.

그는 한국에서의 삶을 1단계로, 2018년에 미국 시민이 되기까지를 2단계로 스스로 분류한다. 그의 인생 3단계는 무엇일까? 실제로 그는 현재 미국의 로스쿨 진학을 준비 중이다. 저자 스스로가 이민자이자 마이너리티이며 열정적이고 사려 깊은 글로벌 시민으로서, 사회적 약자를 위한 봉사에 앞장서기 위해 변호사 자격증 획득을 목표로 세웠다. 그것이 그의 인생 제3단계의 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