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king and Sharing

한국 사회의 복잡성과 문화 콘텐츠의 관계

어제 아내와 동네 산책을 할 때 “요즘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강해진 이유가 있을까?”하고 내게 물었다.

당연히 있다. 내가 미국의 한적한 시골과 세계에서 가장 큰 메트로폴리탄이라는 뉴욕 근처에서 벌써 18년째 살다보니 한국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비록 나무는 잘 보지 못하지만 그 대신에 숲을 볼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다. 그리고 이런 큰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하기 위해서는 나무보다는 숲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큰 덩어리를 볼 수 있는 관점은 한국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보다는 아무래도 내가 더 유리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러한 현상을 연구하는 학자나 그런 분야에서 생존투쟁을 하는 사람들은 내가 따라갈 수가 없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냥 관심있는 한 개인의 관점이라는 것을 먼저 밝힌다.

먼저, 내 아내의 물음에 나는 이렇게 답을 했다.

한국처럼 복잡한 나라는 없다. 그래서 한국인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독창적인 콘텐츠들이 있다. 사람은 상상만으로 한계가 있다. 그런데 그런 복잡성은 문화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나라들 중에서 한국이 단연 좋은 조건을 갖췄다. 미국이나 유럽, 아시아 중 일본이나 대만, 그 어느 나라도 한국처럼 뒤죽박죽 복잡한 사회가 없다. 그래서 한국은 멜로면 멜로, 스릴러면 스릴러, 공상과학이면 공상과학, 어느 분야를 망라하고 기가 막힌 콘텐츠들이 나올 수 있다. 중국에서 아무리 한국 것을 베껴봤자 거기에 머문다. 그들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그렇게 복잡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인이나 유럽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인들이 그나마 한국인들에 조금 가까운데 그래도 한국 사람들의 삶의 복잡성을 감히 따라 오지도 못한다. 한국이 문화적 콘텐츠의 힘은 바로 복잡성에서 비롯되고 있다.

나의 말을 좀 더 정리하면 이렇다. 문화적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나라 중에서 한국처럼 삶이 복잡한 곳은 좀처럼 찾을 수 없다. 한국 사회는 사는 것 자체가 복잡하다. 일상의 우리의 삶을 장악하는 것은 사실 물질보다 정신 세계이다. ‘피곤하다, 힘들다, 아프다, 기쁘다, 슬프다, 죽겠다, 좋다, 행복하다, 골치 아프다’와 같은 수 많은 오감 표현은 결국 정신적인 영역이다. 그리고 그 정신 세계를 장악하는 것이 바로 언어이다. 앞서의 표현들은 마음 속으로만 생각하더라도 우리는 언어로 표현해서 생각한다. 때론 입 밖으로 무심코 나오기도 한다. 아무튼 우리의 감정도 결과적으로는 언어로 구체화한다.

한 살 차이에도 ‘언니’, ‘형’을 붙여야 한다. 기수도 철저하게 따진다. 거기에다 친인척 간의 촌수도 복잡하기 짝이 없다. 나도 사실 잘 모른다. 촌수 호칭 중 하나였던 ‘아저씨’나 ‘아주머니’도 이제는 아무나에게 붙여서 사용하게 되었다.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만나면 몇 년 생인지부터 따져야 그것에 맞는 호칭을 쓸 수 있고 반말로 할지 경어를 사용할지 평어를 사용할지를 결정할 수 있다. 눈치와 코치는 백단쯤 되어야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없다.

아무튼 복잡한 사회 구조다. 그래서 이렇게 복잡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뽑아낼 수 있는 독특한 콘텐츠들이 많을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러스 스토리, 스릴러, 수사물, 공상과학 등 어떤 분야든 독특한 관점의 시나리오가 나올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을 가진 유일한 나라이다.

물론 한국보다 훨씬 복잡한 사회 구조를 가진 나라들이 많다. 예를 들면 인도 같은 나라를 들 수 있다. 거대한 인구에 걸맞게 사회 구조도 복잡하고 삶도 다양하다. 아직도 신분제가 의식 속에 살아 남아 있고 종교와 그에 따른 갈등도 만만하지가 않다. 경제적 차이나 사람 살아가는 모습의 복잡다단한 것은 한국이 따라갈 수 없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들이 한국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글로벌 기준에서 장벽을 최대한 낮출 수 있는 콘텐츠 생산 능력 면에서 뒤쳐진다. 그들이 선진국가도 아니요, K-Pop처럼 글로벌 신세대들이 선망하는 아이돌 아티스트들을 배출하는 나라도 아니다. 음식도 한국처럼 핫하지 않다. 그래서 이 나라는 복잡성은 갖췄으나 매력도는 떨어진다.

따라서 한국이 여러 면에서 큰 기회를 가졌다. 내가 아주 오래 전부터 나라가 부강하려면 국가의 문화적 이미지가 중요하다고 프랑스의 문명비평가인 기 소르망의 말을 인용해서 강조해 왔다. 그런 측면에서는 한국의 국가적 문화 이미지가 매우 높게 올라 있다. 이런 나라에서는 기업들이 전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사업하기가 매우 쉬워진다. 독일제나 일본제, 미제 물건이 무조건 신뢰를 얻었던 시대가 있었는데, 독일은 문화적 이미지가 없어도 유일하게 그들이 생산하는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가 높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일 뿐 모두 그 나라의 이미지와 함께 간다. 한국에게 큰 기회가 왔는데 이럴 때일수록 엉터리 저급성과 조급성으로 콘텐츠를 만들다가는 순망이다. 국적불명의 이상하고 괴상한 문화 콘텐츠보다 현재의 강점을 유지하고 더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