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주의 첫 시선집

오늘, 한국으로부터 누런 봉투에 담겨 보라색 시집 두 권이 내게 왔다. 보낸 이는 내 동생 영주다. 작년 12월 20일 자 소인이 찍힌 소포가 오늘에서야 도착했다.

wp-1578969302830..jpg

wp-15789687566918936632579113339006.jpg

푸른향기에서 발간된 황영주의 첫 시집 말을 씻는 시간》은 태평양을 건너 내 손에 아니 내 마음에 살며시 들어앉았다.

wp-1578968839299..jpg

영주는 자신의 시집 제목으로 쓰겠다며 손글씨인 캘리그래피를 배웠다. 정작 자신의 제목에는 쓰지 못하였지만, 시집 속지에 내게 예쁜 메시지를 남겨 보냈다.

영주는 나와는 외 육촌 형제지간이다. 영주의 시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그녀의 돌아가신 아버지와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와는 고종사촌지간이셨다. 내가 영주를 처음 본 시기는 이십 대 초중반이었을 것이다. 이룬 것도 없고 이룰 희망도 없던, 나의 암울했던 이십 대 청춘, 그 시기에 성북구 종암동 경찰서 뒷골목에 그녀의 가족이 살고 있었다. 당시에 그녀는 밑으로 여동생만 셋을 둔, 고등학생이었다. 깔끔한 안경을 끼셨던 그녀의 아버지는 키가 훤칠하셨다. 아마 그 당시는 지금의 내 나이 정도이셨거나 어쩌면 지금의 나보다 조금 어리셨을 것 같다. 영주의 어머니는 언제나 해맑게 웃으시는 전형적인 가정주부로 기억된다. 그때 나는 영주네 집에 여러 차례 놀러 갔는데 나에게 예쁜 여동생들이 4명이나 생겨서 기뻤다. 그러다가 갑자기 영주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시면서 맏이였던 영주에게 시련이 시작되었다.

참 좋은 시절이 오기 전
서둘러 생을 접으며
다 가져갈 테니
너는
잘 살아라
꼭 그래라
겨울을 안고 잠든 아버지 – 「동백꽃 지면」 중

그녀는 슬펐지만, “동백꽃 지면 찬란한 봄이 오리니”라며 꿋꿋하게 그 시기를 이겨 나갔다. 취직하고 만학을 하면서 내일을 준비해 나갔다. 그리고 오십이 넘어 첫 시집을 펴냈다. 그녀의 시집을 펼치기도 전, 나의 손에 그녀가 보낸 시집을 잡았을 때, 내가 감동을 한 이유이다.

그녀의 시집을 받자마자 나는 단숨에 읽었다. 시를 단숨에 읽는 것은 시인에게는 미안한 일이며 예의가 아니라는 점을 잘 안다. 시는 곱씹으며 읽어야 제맛이 나기 때문이다. 시어 하나하나를 고르고 씻고 말리고 순서를 잡고 위치를 조정하기 위해 시인이 쏟았을 그 정성, 시간이 한 편의 시에 고즈넉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를 한눈에 읽을 수 없는 이유이다. 적어도 시는 속으로 소리를 내어 읽으면 적당한 흐름일 것이다.

wp-1578968768728.jpg

무슨 일인지 우리 집에는 매일 저녁 6시 무렵에야 그날의 우편물이 전달된다. 한국에서 미국 동부까지 이토록 오래 걸렸는데 그나마 우리 집에는 하루가 다 저무는 저녁에야 도착했다. 긴 기다림 탓일까? 봉투를 열자마자 나는 그녀의 시집을 내 책꽂이에 먼저 놓아봤다. 외국어책 속에서도 제법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시집은 이렇게 책꽂이에 놓여 있을 때 가장 잘 어울린다. 소설과 달리 시는 뒤편 서가에 꽂아두었다가 가끔 뽑아서 펼치면서 한두 편을 읽으면 좋다. 내가 한국에서 살던 짐을 배에 실어서 이곳 미국으로 보낼 때, 책이 제법 많았다. 그중에는 고은 시인의 만인보》 같은 시선집들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1980년대 말에 그의 시집을 샀을 때 몇 장만 넘겨 보고 더이상 읽지 않았다. 나에게 그의 시는 그때 이미 사망했다. 그렇지만, 양심의 가책이 남아 있어서 이리저리 이사하면서도 그의 시집을 갖고 다녔다. 노벨문학상을 타려고 그렇게 애를 쓰던 고은이라는 시인이 사실은 성적 학대를 일삼던 저질 중의 저질이었음이 드러났을 때, 나는 비로소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용감한 최영미 시인에 의해 그가 실상은 추악한 괴물이었음이 드러났다. 나는 그런 고매한 척하는 자들이 쓴 현학적인 시보다는 영주의 시들이 단숨에 읽힌 까닭을 생각해 봤다.

wp-15789687977628958639030784038167.jpg

영주하고 있으면 나는 늘 편안해졌다. 그래서 나는 침대에 누워 영주의 시들을 읽었다. 시집은 4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사람을 그리고, 풍경을 만지고, 삶을 묻다가 삶을 입는 순서로 이뤄져 있다. 결국은 사람 사는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를 목격하고 그리워하고 만지며 질문을 던지다가 끝내 그 이야기를 자신의 삶으로 엮어낸다. 바로 시인 자신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그녀의 시는 두리뭉실하거나 현학적일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녀의 시들은 한결같이 시어를 빚어낸 시인 자신을 똑 닮았기 때문이다. 이 시집의 이름인 《말을 씻는 시간》은 그녀의 시,「말을 씻는 시간」에서 따 왔을 것이다. 이 시를 읽어보면, 시인이 어떻게 시를 대하고 있는지를 잘 말해 준다.

wp-1578968874908..jpg

사람이 손으로만 만지랴
마음이 곧 말이니
말을 씻는 일
나를 다시 빚는 일이다 – 「말을 씻는 시간」 중에서

그녀에게 시는 곧 마음이요, 마음이 곧 말이므로 말갛게 헹궈 별살에 담아 다시 사람들에게 내 줄 수 있는 순수한 대상인 것이다.

말갛게 헹궈
별살 담뿍 담으면
내일은 마음껏 내어줘도 좋으리 – 「말을 씻는 시간」 중에서

이 얼마나 명징한 표현인가?

시는 모름지기 글재주만을 가진 사람이 써서는 안 된다. 인성으로 시를 담을 수 있어야 한다. 품성은 썩었는데 글재주만 가진 사람의 시는 탁할 수밖에 없다. 탁한 자신을 숨기기 위해 세상을 현혹하는 일에 집중한다. 고은의 《만인보》(萬人譜)는 말 그대로 만 명에 달하는 군상들에 대한 기록이라고 시인은 웅변했었다. 삐뚤어진 그의 삶을 통해 쓰인 시들은 결국 나에게 몇 쪽만 읽힌 채 죽었다. 대신에 나는 영주의 시집을 읽는 동안 시인과 차 한잔을 하면서 대화를 하듯이 편안하고 즐거웠다.

우리에게 말만 있을까
눈길 손길 발길
마음길까지

닿는 곳 어디든
따뜻하게
안을 수 있어

그대를 사랑하는
나는 언어다 – 「사람의 언어」 전문

나는 「사람의 언어」라는 제목의 시를 읽다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부엌으로 내려가 인도산 원두커피를 갈아서 진하게 한 잔을 만들었다. 한 모금 마시니 입속 가득 감미로운 맛이 오래도록 남았다. 마치 영주의 시를 읽고 난 후의 느낌과 많이 닮았다. 커피는 마실 때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커피생두를 주문할 때부터 생두의 원산지, 생산되었을 때의 중요한 이력, 주문한 생두가 도착했을 때의 안도감, 갑자기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 여러 가지 종류의 생두 중에서 선택할 때의 설렘도 있다. 커피 로스터기에 들어간 커피생두가 점차 연기를 내면서 사방으로 퍼지는 짙은 향, 그렇게 만들어진 갈색톤의 원두커피를 커피 믹서기에 넣을 때의 그 청량한 소리며 잘게 부셔질 때 주변에 퍼지는 향도 중요한 과정 중 하나이다. 마침내 주전자에서 떨어지는 뜨거운 물을 만나 깔때기에서 뽑혀 나오는 커피 액을 바라보는 것도 포함된다. 한마디로, 커피를 마시는 행위가 결말이 아닌 것처럼, 시도 그렇다. 시는 삶을 언어로 표현할 줄 아는 시인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결국은 사람이다. “그대를 사랑하는 나는 언어다”라고 시인이 고백했듯이 “나”는 시인이요, “언어”는 시인을 만나서 독자가 “따뜻하게 안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시를 다 읽고 시집의 뒤편에 실린 수필가 심명옥 선생의 “동사로 쓴 시를 형용사로 읽다”라는 제목의 해설을 읽으면서 비로소 황영주의 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정말 잘 쓰인 해설서다.

이쯤에서 첫 시선을 낸 영주에게 박수를 보낸다. 원래 첫 번째 소설이나 첫 번째 시집은 문인의 최고 정수가 담기기 마련이다. 자신이 살았던, 고민했던 에너지를 모두 쏟아 넣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번째, 세 번째 문학집을 내는 것이 갈수록 어려운 이유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대부분 젊은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내용이다. 달은 차면 자연스럽게 기울듯 누구에게나 충전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젊은 나이에 모든 것을 쏟아 넣은 후,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하게 작품을 내다보면 뭔가 허술하기 마련이다. 결국 한때 반짝이던 신인 작가로 기억되다가 급속하게 잊히게 된다. 그러나 이문열 소설가처럼 뒤늦게 문단에 데뷔한 사람들은 워낙 살아낸 연한이 많아서 연작을 내도 여전히 속이 꽉 찬 작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내 동생 영주의 다음 시선도 기대가 된다.

항상 나보다 한 발짝 먼저 걸어가고 있는 영주를 보면, 기쁘다. 나도 책을 내 볼까 해서 그동안 썼던 글 중에서 1차로 360편 정도를 골랐는데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다. 여행, 성찰, 추억, 교육 관련에세이로 크게 분류해 놓은 상태이다. 이 주제를 각각 내 볼까, 아니면 섞어서 내 볼까 생각만 하고 있어서 사실 진전이 없다. 그것도 영어로 미국에서 내려고 마음 먹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wp-1578969860950..jpg

그런데 세월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생을 유지하는 한, 언제까지나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므로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며칠 전에 내 딸 루비가 쿠키를 만들었는데 그 속에는 우리 집 식구들과 고양이 두 마리가 들어 있다. 우리 집은 아들의 알레르기 때문에 고양이를 키우지 않고 있지만, 개와 함께 고양이를 키우는 것이 딸의 로망이다. 이렇듯 자신의 꿈을 잊지 않고 있다면, 그것이 설령 현실이 되지 않더라도 그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그런 면에서 자신의 꿈을 하나씩 실현해 나가고 있는 황영주 시인은 멋진 사람이다.

네가 꿈꾸면 주변이 행복해지고, 주변이 행복해지면 이 세상도 함께 행복해 질 테니까, 꿈을 계속 꾸기를 바란다, 영주야.


나는 현재 내 블로그의 모든 글을 비공개로 처리해 두었다. 그렇지만, 이 글은 당분간 공개해 놓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