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과 진실의 차이

위의 사진은 여러 마리의 치타에 둘러싸인 임팔라(Impala) 한 마리가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늠름하고 당당하게 죽음에 맞서는 이미지로 유명하다. 이 사진에 얽힌 스토리는 여러 버전이 돌아 다닌다. 나는 오늘 링크트인(LinkedIn)에 포스팅된 것을 통해 처음 이 사진과 스토리를 접하고 뭉클했다. 그 글은 아래와 같았다.

지난 10년 사이에 찍은 사진 중, 이 사진으로 최고의 상을 받았지만 이 사진작가는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치타들이 어미 사슴과 두 마리의 새끼 사슴(아기 사슴)을 쫓았습니다. 어미는 치타를 쉽게 앞지를 수 있었지만 대신 아기 사슴들이 안전하게 도망칠 수 있도록 치타에게 자신을 바쳤습니다. 사진 속의 엄마 사슴은 갈기갈기 찢길 위기 속에서도 안전하게 도망치는 그녀의 아기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사진과 관련된 가슴 뭉클한 이야기는 각종 소셜미디어마다 사람들은 수천 수만 개의 댓글과 ‘좋아요’로 공감을 표한다. 나도 이 사진을 처음 본 순간, 처연한 사슴의 눈동자와 반듯한 자세를 보고 “조작된” 혹은 “익살스러운”과 같은 단어가 떠 올랐을 정도였다. 치타에 목이 물리고 다른 치타가 어깨죽지를 물려고 하는 상황에서 사슴의 시선은 먼거리에 고정되어 있다. 보통은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을 치는 장면이 자연스러운데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연을 읽어보니 감동적이며 사진을 그럴듯하게 잘 설명하고 있었다. 어느 댓글에는 자신이 다섯 살 때 자신을 위해 희생한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 세상의 아버지도 마찬가지로 숭고하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한편 내가 오늘 처음 본 이 글의 게재자는 마침 케냐에서 블로거 등으로 활동을 하는 브랜드 티샤(Brenda Tisha)라는 여성이어서 그녀가 직접 찍은 사진이겠구나 하면서 무언 중에 그녀의 예술 활동에 호감을 갖게 되었다. 그녀에게 친구 신청을 해 놓고 그녀에 대해 조금 조사를 하다가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친구 신청을 철회했다. 대신에 한마디 따끔하게 충고하려고 찾아보니 검색이 쉽지 않아 포기했지만.

이렇게 세상에는 사실과 다른 것들이 사실인양 포장된 채 퍼져 나간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사진에 담긴 진실은 무엇일까?

나는 2013년 9월 케냐의 마사이 마라(Maasai Mara)에서 이 치타가 죽이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치타들의 엄마 나라샤는 새끼들에게 먹잇감을 죽이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새끼들은 이해력이 조금 느렸고 불행한 먹이(임팔라)를 죽이는 대신 가지고 놀고 있었습니다. 제 모든 사진에서 임팔라의 목을 움켜주고 있는 것이 치타 엄마 나라샤입니다. (사냥에 나설만큼 큰) 새끼들은 때리고 넘어 뜨리는 것과 같은 기술을 연습하지만 임팔라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교살할지는 잘 알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일련의 사진에서 특이한 점은 임팔라가 시련을 겪는 동안 얼마나 침착한가입니다. 아마도 충격을 받아 공포로 마비되었을 것입니다. 특히 6번째 사진에서는 마지막까지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기로 마음 먹은 듯한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어쩐지 불안합니다. 그 눈에 보이는 반항은 자기 보존에 대한 관심 부족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이를 통해 나는 그들의 우아함 속에 각색된 것처럼 보이는, 사냥의 독특한 사진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사진을 보는 관객들이 이 임팔라를 동정하고 동시에 이 특이한 살해의 불안한 본질을 저와 함께 목격하기를 원했습니다. 끝이 없는 영원처럼 보였던 시간이 지난 후(하지만 불과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엄마 치타는 임팔라를 불행에서 구해 냈고 (빨리 죽이는 게 임팔라에게는 불행을 끝내는 일) 새끼들은 맛있는 식사를 즐겼습니다.

위의 내용이 진실이다.

핀란드에 거주하는 몰타 출신의 여성 사진작가 Alison Buttigieg가 찍은 사진이다. 3개의 작가상을 수상한 앨리슨은 야생동물과 야상지대 등을 주로 찍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다. 그녀가 페이스북에 자신의 사진을 공유한 것에 공감을 표한 것보다 가짜 스토리들이 아마도 수만배 이상의 참여를 이끌어 냈을 것이다. 진실보다 거짓이 더욱 힘을 가지게 된 세상이다.

출처: Alison Buttigieg의 Wildlife Phtography: http://www.alisonbuttigieg.com/cheetahkill/

나는 우리가 무심결에 자신의 마음을 터치하는 글이나 사진, 동영상 혹은 이야기를 들으면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처럼 아무리 좋은 내용으로 포장을 하더라도 자신의 이익(당연히 요즘의 소셜 미디어에서는 노출을 통해서 얻는 금전적인 이득이다)을 위해 마음대로 조작을 하는 것은 큰 문제이다. 내가 만일에 검증을 하지 않고 무턱대고 이 놀라운 사진 한 장에 공감을 하면서 그것을 다시 퍼뜨렸다면 나도 똑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는 글을 쓰기 전에 조사를 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사람들이 “이러저러하다”라고 하는 말에 나는 그 자리에서 쉽게 맞장구를 치지 못한다. 특히나 그 주제가 다소 심각한 것일수록 그렇다. 나와의 관계가 어려운 사람이 아니라면, 그 자리에서 검토를 해서 사실을 수정해 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나도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답지 않게 막연하게 어떤 내용을 나의 딸에게 전달했다가 얼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다. 나의 바로 위의 형이 작년에 카톡으로 어떤 유튜브 영상을 하나 나에게 링크해서 보냈다. 코로나 팩데믹이 이탈리아를 휩쓸때였다. 동영상의 내용은 경찰 같은 사람들이 곤봉으로 항의를 하는 민간인들을 사정없이 두들켜 패면서 자동차에 강제로 태우는 모습이었다. 동영상의 자막에는 이탈리아에서 현재 벌어지는 사태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나도 그것을 검증하지도 않은 채 내 딸에게 포워딩을 했는데, 곧바로 딸 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아빠, 이건 이탈리아가 아니잖아. 경찰들의 복장도 그렇고 배경에 나오는 도시들이 어떻게 이탈리아인가? 그리고 말도 이탈리아어가 아닌데. 요즘 아무 것도 확인하지 않고 퍼지는 게 너무 많아.”하고 말했다. 나도 그 배경이나 말투가 이탈리아가 아닌듯 싶었지만, 당시에 이탈리아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니까 막연하게 믿었던 것이다. 내가 해당 동영상 내용을 조사해 보니 이란의 내용이었으며 그것도 코로나 팬데믹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유튜버들이 조회수를 올리려고 거짓 정보를 넣어서 유포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였다.

이렇듯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퍼지는 암적인 존재들에 현혹되어서는 안된다. 오늘, 대법원(원장이란 자는 나중에 감옥에 갈 것 같다)에서 경남지사라는 김경수가 저지른 지난 대선에서의 댓글조작으로 118만 8000개를 검색 상단에 노출되도록 조작한 것이 인정되어 감옥에 넣는 판결을 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이 옳은지 틀린지를 모를 때 타인의 의견을 살피는 경향이 있다. 내 경험상 특히 그것은 한국에서 심하다. 다수가 지지하면 옳은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틀린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을 뿐만 아니라, 모난 정이 되지 않으려는 특성도 있다. 그리고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배인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남과 다른 의견을 내면 안되는, 그런 문화에서 자란탓도 크다. 두리뭉실이 최대의 미덕이요, 대마불사처럼 큰 놈에 붙어서 사는 게 안전하다는 의식도 한몫한다.

그러나 대세에 맞지 않는다고 위축될 필요가 없다. ‘너는 너’, ‘나는 나’와 같은 당당한 자세를 갖고 세상을 사는 게 맞다. 그래야 이런 저런 색깔이 어우려져 살맛이 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