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king and Sharing

오묘 누나


오묘 (OMIO)에게는 이 세상 유일한 그의 가족인 누나가 있다. 세상에 버려진 자신을 품은 유일한 사람이라서 한 시라도 떨어져 지낼 수 없다. 한국에서 7개월 가량 강남의 한 스튜디오에서 살다가 그녀를 따라 바다 건너 미국에 와서 살고 있다.

사진 출처: 오묘 인스타그램

자기 누나가 작업을 할 때에도 컴퓨터 위에 앉거나 최소한 팔베게를 하고 누워 있다. 누나가 한밤중에 화장실에 가면 자다가도 일어나 화장실 문 앞에서 기다린다. 따라서 집에서 하루 종일 졸졸 따라 다닌다. 오묘 누나의 표현에 의하면 스토커 수준이다.

이름이 오묘인 이 고양이는 오묘 누나가 한국 (2020년 5월-2021년 7월)에 있을 때 입양한 수컷 고양이인데 중성화 수술을 해서 그런지 얌전하다. 자기 누나가 옆에 있으면 세상 안전한지 네다리를 천장을 향해 뻗치고 자기도 한단다.

애담슨 소시에이츠 아키텍츠 인스타그램의 일부 이미지

그런데 이 오묘 누나가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다. 늘 그렇듯 바쁜 나날을 보내는 것 같다. 졸업 논문도 완성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매 학기마다 시달리는 프로젝트 거기에다 취직 시즌이라 포트폴리오 만드는데 시간을 쓰더니 최근에 몇 군데 입사 지원서도 냈다고 한다. 그러다가 오늘 오묘 누나가 나에게 연락을 해 왔다. 자기가 이틀 전에 인터뷰를 한 곳에서 잡 오퍼가 왔다고 했다. 1주일 안에 결정해 달라고 했다면서 자기는 왜 그곳에서 자신을 뽑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애담슨 소시에이츠 아키텍츠 (Adamson Associates Architects)라는 곳인데 1934년에 설립된 500 명이 넘는 대형 건축회사로 캐나다 (토론토, 벤쿠버)와 뉴욕, 로스앤젤레스 (LA), 런던에 사무실이 있는 곳이다. 만일에 오묘 누나가 이 회사에서 일하기로 결심하면 LA 오피스에서 일하게 된다. 여러 보험 혜택과 12일의 유급 휴가, 11일의 공휴일, 크리스마스 무렵에 한 주간 동안 일하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잔업이 없이 오후 5시에 업무가 종료된다고 한다. 이 회사에는 오묘 누나에게 초봉으로 $67,000을 제시했다는데 이 금액은 사실 꽤나 높은 셈이다. 오묘 누나처럼 5년제 건축학과를 마치고 정규직으로 들어가서 일을 하는 건축가를 쥬니어 아키텍이라고 한다.

전 세계 기업의 취업 정보에서 꽤 높은 신뢰를 받고 있는 글래스도어(glassdoor.com)에 따르면, 위의 자료가 오묘 누나에게 자리를 제안한 애덤슨건축회사의 뉴욕시 직원들의 연봉 정보이다. 신출내기 건축가들의 평균 연봉은 $63,325 (7천6백만원)이며 일반 건축가들이 $88,428 (1억 7백만원) 수준이다. 원래 건축가의 급여는 낮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67,000을 제안 받았으면 꽤나 좋은 수준이라고 오묘 누나가 말한다.

오묘 누나는 원래 건축 디자인 회사를 들어가려고 했는데 이 회사는 전 세계에서 이름 있는 건축회사들과 작업을 많이 한다고 한다. 그래서 초보 건축가로서는 디자인만 하는 것보다는 종합적인 측면에서 배울 게 많다고 오묘 누나는 말한다. 엊그저께 인터뷰 (물론 온라인 인터뷰)를 했는데 오늘 전화를 걸어와서 자리를 제안해 왔으니 오묘 누나 입장에서는 다소 놀랐다고 한다. 그녀는 이번 여름에 LA에서 2달 동안 프로젝트를 하기로 되어 있다. 오묘 누나의 교수가 LA에서 운영하는 건축회사가 있는데 자기 회사에서 여름에 프로젝트를 함께 하자고 몇 달 전에 제안을 해 왔기 때문이다. 아예 자기 회사에 취직하라고 했다지만, 오묘 누나는 여름 프로젝트만 하겠다고 했단다. 마침 두 곳 모두 같은 LA 도심에 있다. 오묘 누나는 그 건축회사에는 9월부터 정식으로 일할 수 있으며 프로젝트가 일찍 끝날 수도 다소 늦게 끝날 수도 있다고 전했다고 한다. 그 회사는 오묘 누나의 스케쥴에 맞게 계약서를 작성하겠다고 했단다.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에도 자기 회사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으므로 상황을 보자고 했다고 한다.

오묘 누나는 최근에 졸업할 때까지 취직이 되지 않을까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무엇보다 좋은 건 일단 무직을 면한 것이라고 웃는다. 1주일 안에 몇 군데에서 잡 오퍼가 오지 않으면 이 회사에서 최소한 1년을 일을 해야 할 팔자 같다. 마침 지난 겨울에 오묘 누나는 그녀의 절친이 있는 LA에서 몇 주간 함께 보내면서 그 도시와 주변이 마음에 너무 들었다고 한다. 그 절친은 가을에 하버드 디자인대학원에 다시 가게 되어 둘은 다시 헤어지게 되었지만, 그때 만난 절친의 친구와 친해져서 아마도 함께 아파트를 빌려서 지내게 될 것 같다고 한다.

오묘 누나는 내게 Z4를 가져 갈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물론 된다고 했다. 오묘 누나가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몰고 다녔던 차인지라 그녀는 Z4를 좋아한다. 몇 군데의 회사에 알아보니 여기에서 엘에이까지 차를 화물로 보내면 약 1,500불에서 2,100불 정도의 비용이 들어간다. 현지에서 차가 있어야 자유롭게 이동하고 치안에도 좋다. 더구나 캘리포니아 남부는 눈이 오지 않기에 Z4가 적합하다.

이제 5월 28일에 졸업을 한다. 이번 졸업식은 정식으로 한다고 한다. 학생당 식구 4명이 참여할 수 있다고 하니 우리 식구들은 졸업식에 참석할 수 있다. 오지 않을 것 같은 오묘 누나의 졸업식이 이제 코 앞이다. 돌이켜 보면 오묘 누나가 건축학과를 목표로 했을 때인 2012년 무렵부터 입학이 결정되었을 때인 2014년 12월의 어느 날이 생각난다. 나는 워싱턴 근교의 한국일보사에서 열렸던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폭설을 뚫고 그곳까지 갔었다. MIT 건축학과장인 코넬대 건축학과 출신의 한인 여성과 역시 코넬 건축학과 출신으로 그녀의 남편이기도 한, 하버드 디자인대학원 교수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건축 세미나였다. 세미나를 녹화하는 동안에 나의 폰은 뜨거워졌지만 나는 오묘 누나도 저들처럼 제대로 된 코스를 밟아서 이 다음에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건축대학(코넬은 대학별로 입학 사정을 한다)의 입학처장이 손글씨를 보내 와서 오묘 누나와 입학 면접을 한 인터뷰 진행자(코넬 건축학과 출신의 지역 건축가였다)가 자신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오묘 누나는 꼭 합격시키라고 했다고 알려 왔다. 그렇게 들어간 학교를 오묘 누나는 재미 없다며 한 학기만에 때려 치웠다. 그래서 2016년 가을부터 미국 최고의 디자인 스쿨 중 하나인 뉴욕의 SVA (School of Visual Art)에서 디자인 공부를 했다. 이 대학에서는 오묘 누나는 1년 동안 올 A+를 받으면서 최우수 성적을 거뒀지만, 다시 코넬로 돌아갔다. 그때가 2017년 가을이었다. 나는 2016년 겨울에 콘도를 하나 샀는데 딸 아이가 앞으로 맨해튼에서 계속 생활할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오묘 누나는 겨우 한 학기만 보냈다. 그후에 어쩔 수 없이 세를 놓고 있지만, 세금과 관리비로 1년에 거의 3만불 좀 안되는 돈을 지불하는데 그것이 렌트비와 비슷하다.

오묘 누나도 졸업 후에는 홀로서기를 하게 된다. 직장을 다니다가 절친을 따라서 아마도 대학원에 진학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쩌다 부모가 있는 곳을 방문하게 될 것이다. 오늘 점심을 먹으면서 오묘 형 (오묘 누나의 남동생)에게 취직 소식을 전했더니 잘 되었다며 좋아한다. 한편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자기는 인문학 전공이라 졸업해도 마땅히 취직할 회사도 분명하지 않아서 어떻게 돈을 벌지 현재로서는 막막하다고 말한다. 참고로 오묘 형은 어제 밤에 갑자기 집에 왔다. 내가 침대에 누워 잠을 자려고 하는데 들어왔다. 내 생일이 내일인데 함께 보내기 위해 왔다는 것이다. 오묘 형과 오묘 누나는 나이 차이가 다섯 살이다. 그런데도 오묘 형은 자기 누나가 늘 성공적으로 잘 해나가는 것을 보며 존경심도 갖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심적인 부담도 있는 것 같다.

오묘 형은 요즘 약간 들떠 있는 일이 있다. 오늘 낮과 저녁에는 스케이드보드를 하는 것을 촬영하느라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들어왔다. 내용인즉, 올 여름에 2달간 일리노이에서 영화 제작 프로젝트가 있는데 그곳에 지원하기 위해 오디션 준비를 하고 있단다. 자기가 지원할 곳은 주인공 역할인데 캐스팅 디렉터가 HBO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하며 그 영화의 감독은 오스카상 다큐멘터리 후보에 오른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주인공 역할로 요구한 사항이 자신이 적합하다는 게 오묘 형의 주장이다. 즉, 어렸을 때부터 영화 만들기를 좋아한 사람이어야 하며 스케이드보드를 탈 줄 알아야 하며, 중국계 미국인이야 한다고 했다. 오묘 형에게 나머지 2개 항목은 완전히 충족되며 마지막으로 중국계 미국인은 아니지만, 코리안 미국인으로서 자격이 되지 않겠느냐는 게 오묘 형의 주장이다. 즉,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제작하는 것인데 그래서 아마도 중국계 미국인을 요청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앞의 두 가지 항목을 충족할 수 있을 가능성은 매우 제한적이어서 자기에게 기회가 오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스케이트보드 타면서 찍은 영상은 물론, 인터뷰 영상도 제작해서 보내기 위해 요즘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 같다. 만일에 오묘 형의 바램처럼 오디션에 합격하면 올 여름에 2달동안 일리노이주에 가서 보내 게 될 것 같다.

오묘 형의 바람이 잘 이뤄지기를 아빠로서 바란다. 내일은 우리 가족이 미국에서 첫번째로 외박하며 여행했던 커네티컷의 미스틱(Mystic, CT)를 간다. 물론, 오묘 형의 아이디어다. 내 생일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만으로 59년을 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