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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과 영어 수업이 행복하려면

오늘 한국의 주요 탑 뉴스는 수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에서 한국인으로는 첫 수상을 한 허준이 교수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뉴스 제목을 뽑은 것을 아주 일부만 보면 이렇다.

고교 중퇴한 수포자 ‘수학 노벨상’ 받았다… 대학때 F 수두룩 “시작하기에 늦은 건 없어”
‘수포자→늦깎이 천재’ 필즈상 허준이 교수… 해결한 난제만 10개 高자퇴에 검정고시… 수포자였던 어린시절 시인·과학기자 꿈꿔… 日 헤이스케 교수는 전환점
한인 첫 ‘수학 노벨상’ 필즈상 쾌거…그는 韓고교 중퇴자였다
시인 꿈꾼 고교 자퇴생, ‘수학계 노벨상’ 품었다
“한국 수학계 소원 50년 앞당겼다”…허준이 교수 ‘필즈상’ 낭보에 학계 환호
‘노벨상보다 어렵다’…허준이 교수가 받은 필즈상은?
[속보]허준이 교수, 필즈상 영예…한국계 수학자 최초 수상
한인 첫 ‘수학 노벨상’ 필즈상 쾌거…그는 韓고교 중퇴자였다

만일에 노벨상이었다면 난리가 났겠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쳐다보기도 싫은 수학 분야에서 받은 것이라 이 정도로 차분했을 것이다.

출처: 뉴사이언티스트. 2022 필즈메달: 소수와 구(3차원 공간에 주어진 점으로부터 모두 같은 거리에 있는 r에 있는 점들의 집합)에 대한 연구로 수학상 수상.

뉴사이언티스트는 “8차원 공간에서 구를 채우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과 소수의 간격을 연구한 수학자들이 올해 수학 분야 최고상인 필즈상을 수상”했다고 밝혔다.

3차원도 이해하기 힘든 판에 8차원을 연구한다니 우선, 기가 질린다. 허준이 교수가 필즈상을 받자 한국 언론은 다양한 기사를 쏟아 내고 있는 중이다. 그중 조선일보의 비즈니스 판에서는 아래와 같이 소개를 하고 있다.

허 교수는 아버지 허명회 고려대 통계학과 명예교수와 어머니 이인영 서울대 노어노문과 명예교수의 미국 유학 시절인 1983년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미국 국적이지만, 두 살 때 부모를 따라 한국에 들어온 뒤 초등학교와 중학교 모두 한국에서 다닌 국내파다. 고등학교 시절 시인이 되고 싶어 자퇴 후 검정고시를 봤던 독특한 일화는 수학계 내에서 이미 유명하다.

이인영 교수님은 내가 연희동의 한 저작권 중계 회사에 다닐 때 만난 적이 있다. 1989년이었을 것이다. 내가 “한반도 재통일”이라는 영어 책을 이 교수님에게 소개하기 위해서 그녀의 연구실을 방문했던 것이다. 그 후에 그 분은 러시아 대사 등을 지낸 것으로 알고 있다. 허준이 교수가 그 분의 자제라는 것을 이 뉴스는 전하고 있다.

허준이 교수가 언급한 내용 중에 귀담아 들을 내용이 있다. 그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의미 있는 말을 했다.

그는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의 전 국민이 수학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데 대해 “수학이 문제가 아니라 입시 구조가 문제”라며 “내년부터 입시에 수학을 안 넣겠다고 하면 바로 수학 스트레스가 해결되지 않겠느냐”고 우스개를 했다. “미국에서 보니 그렇게 수학 공부를 많이 하고 온 한국 학생들이 뜻밖에 수학에 대한 깊이가 낮았어요. 그런데 수학 스트레스는 한국 학생이 심하죠. 입시 수학의 병폐입니다.”

나는 한국의 교과서 집필하는 사람들과 시험 출제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처음부터 기획하고 고집하는 사람들이 한국의 교육을 망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한국의 고등학교 수학의 수준이 미국 대학의 수학과 비슷하다는 말도 있다. 그리고 수능에 출제된 영어 문제를 미국이나 영국에서 공부를 제대로 한 사람들(수준 높은 대학 출신)이 못 푸는 문제들도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이야기이다.

국뽕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것을 두고 한국인이 얼마나 뛰어난지 자랑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 얼마나 큰 희생이 뒤 따르는지 몰라서 하는 말이다.

내가 만일에 한국의 교육을 뜯어 고치는 권한을 갖고 있다면, 현재의 한국에서 가르치는 중학교 수학은 초등학교 수학 수준으로, 고등학교 수학은 중학교 수학에서 조금 높여서 가르치게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수학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모두들 눈 감고도 문제를 풀 수 있으니 수학 성적에서 높은 점수를 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해도 애초에 기초적인 수학에도 재능이 없는 소수의 그룹은 어쩔 수 없더라도 대다수의 학생들은 수학 때문에 평균 점수를 깍아 먹지도 않고 과다하게 수학에 시간을 쏟지 않아도 된다. 수학이 효자 과목이므로 학생들은 수학을 좋아한다. 수학 시험이 쉬우면 수학 과목에 의한 변별력이 떨어지겠지만 그게 무슨 대수인가? 다들 열심히 공부해서 95점, 100점을 맞는다고 그것을 방해할 목적으로 어려운 문제를 배우게 하고 시험에 출제하는 게 무슨 해괴한 논리인가? 공부 열심히 해서 얻은 점수는 변별력이 없더라도 인정을 받아야 한다.

영어도 마찬가지이다. 대학을 졸업한 원어민도 풀지 못하는 것을 출제하는 현재의 방법은 아주 멍청한 짓이다. 누구나 조금만 노력하면 100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기초적인 회화와 글쓰기, 읽기 능력을 갖추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영어에 엄청난 시간을 쏟아야 하는 일은 없을 뿐만 아니라 고등학생들은 현재의 중학교 수준만 되면 충분하게 해야 한다. 영포자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또한 수학과 영어만 가장 중요한 과목이 아니다. 다른 과목들도 지나치게 어렵게 구성되어 있을 것이다. 그 수준을 과감하게 낮춰야 한다. 누구나 노력을 하면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도 미국 대학에서 수학 과목을 들었는데 고등학교 수준으로 느껴졌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 대학에서 수학 과목을 들은 학생 100명에게 물어보면, 수학이 아주 쉽다고 대답할 것이다. 대신에 우리의 생활에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허준이 교수처럼 진짜 수학을 좋아하는 학생들은 대학원을 진학해서 시작한다. 처음 수학을 연구하겠다고 전 세계에서 대학원에 모여든 학생들 중 아시아권 학생들은 수준이 시시하게 느낀다고 한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실력 차이가 벌어진다고 한다. 더 이상 많이 풀어보고 익숙한 “숙련의 문제”가 아니라 한 번도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이상한 문제”에 접어들면서 실력이 드러난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수학으로 날라 다녔다는 학생들도 자포자기하는 시기가 온다는 게 미국에서 수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박사과정에서는 더 큰 차이가 난다고 한다. 그래서 마지막에 수학학자로 세상에 빛을 내는 사람들 중에 한국인이 제대로 없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이번에 드디어 한국인(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으니 그는 미국인이지만, 한국에서 초등학교부터 대학 교육까지 받았으니 한국인이라고 부르는 것도 가능하다)이라고 부를 수 있는 허준이 교수가 상을 타자 다들 난리가 난 이유가 그 한계를 느낀 분야의 천장을 그가 드디어 깼기 때문이다. 그것에 대해 구자경 카이스트 수리과학과 명예교수가 경향신문과의 퉁화에서 한 내용이다.

“같은 수학자로서 굉장히 기쁜 소식”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일본은 현대수학 역사가 100년이 넘고 필즈상 수상자도 몇 명 배출했지만 한국이 현대수학에 동참한 역사는 50~60년 정도로 길지 않다”며 “일본을 따라가려면 50년은 더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했는데 허 박사의 수상 소식은 우리의 소원을 50년 정도는 앞당긴 수학계 ‘빅 뉴스’”라고 했다.

전국 고등학교의 수학 수준이 미국의 대학교 수학 수준인 한국에서 왜 구교수가 놀랍다고 표현하는지 의아스럽지 않은가?

정말로 수학을 재미 있게 느끼는 학생을 만들지 못하는 교육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번처럼 천재 한 명에게 의존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쩌다이다. 김연아라는 천재가 일군 피겨에서 아직 이렇다할 스타가 나오지 않는 이치와 마찬가지이다. 내가 늘 주장하는 것 중 하나는 해당 분야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그 분야 도전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확률의 문제이며 경쟁력의 문제이다. 현재 골프에서 여자 선수들이 우수한 성적을 거둔 것은 박세리의 성공을 보고 수 많은 아빠들이 그들의 딸들을 골프에 밀어 넣었기 때문이다. 인구의 풀이 크면 클수록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 한국의 케이팝에서 성공하는 아이돌들이 많아지지만 그들이 그 자리에 서기까지 엄청난 경쟁을 뚫어야 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좋아서 해야지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 뛰어 들면 확률이 떨어진다.

마찬가지로 수학과 같은 학문도 한 번 싫어지면 멀어지게 되어 있다. 허준이 교수처럼 실제로는 잠재적인 수학 천재인데도 그의 스토리를 살펴보면 수학을 포기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아찔한 순간들인가? 따라서 우리 주변에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수 많은 사람들도 어쩌면 젊은 날에 그런 일이 없었다면 어떤 분야에서 천재적인 명성을 날리며 우리의 삶을 한층 더 좋은 방향으로 끌어가는 사람들일 수 있다.

한국의 교육은 정말, 문제 투성이다. 학교 교육은 자존심으로 수준을 결정해서도 안되며 시험에서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서 출제 수준을 조정해서도 안된다.

내가 중계동에서 개인 과외를 할 때 한 학생이 생각난다. 내가 오래 전에 “과외 선생“이라는 글을 통해서 언급했던 고등학교에 다니던 여학생이었는데 화학의 주기율표를 외우는 방법을 알려 준 후에 학교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좋아하던 그 아이가 생각난다. 그렇지만 그 이후에는 학교 시험에서 더 이상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자 금새 풀이 죽었다. 학습 진도가 진행되면서 농도를 구하는 문제들이 쏟아지는데 거의 수학처럼 계산을 해야 풀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예쁜 아이가 수학을 어려워 하고 과학을 어려워 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희망이 점점 줄이는 것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웠던 기억이 난다.

한국의 대학교 수학과 교수들은 착각을 한다. 자기들처럼 모두가 수학을 재미 있어 하거나 입학생들이 적어도 충분한 실력이 되어 있기를 바란다. 언론에다 서울대 입학생 중 수학 실력이 모자라서 새롭게 기초를 가르켜야 한다는 둥 궁시렁 거리던 교수들의 인터뷰 기사를 종종 읽었던 기억이 난다. 미안하지만 그런 것은 대학원에 진학해서 시작해도 늦지 않는다. 허준이 교수가 그것을 잘 보여주지 않는가? 그냥 고등학생들에게는 수학을 포기하지 말고 영어를 포기하지 말고 다른 과목들도 포기하지 않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좀 더 쉬운 문제를 생활에 깊숙하게 연계해서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험을 치면 까먹는 공부말고 생활속에서 진짜로 써 먹을 수 있는 공부를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후의 전공은 대학에서 찾을 수도 있고 대학원에서 찾을 수 있도록 해도 늦지 않는다. 제발 하루에 학교 수업 말고도 새벽 2시까지 공부해서 1등급을 받도록 하지 말고 밤 9시, 10시까지 공부해도 충분히 1등급을 받을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 그리고 등급제도 상대적 평가 대신에 절대 평가로 바꿔야 한다. 어느 시험에서 100점짜리가 왕창 쏟아지더라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길 필요 없이 수험자들이 열심히 공부한 것을 칭찬하면 될 일이다. 학생의 선발은 대학이 알아서 하게 두면 된다. 그것까지 콩놔라 팥놔라 간섭할 일이 아니다.

이번 일과 관련하여 조선일보에서는 다양한 기사를 냈다.

‘수포자’에서 ‘천재수학자’로… “인생도, 수학도 성급히 결론 내지 마세요”라는 제목으로 허준이 교수와 화상 인터뷰를 해서 낸 기사가 그 중에서도 가장 밀도가 높은 것 같다. 인터뷰 시점은 2022년 1월 1일 새해 첫날이었다. 그러므로 필즈상을 수상하기 훨씬 전에 이 천재 수학자와 깊은 이야기를 나눈 기사이다.

시인을 꿈꾸던 수학 포기 청소년이 20년이 흐른 후, 전 세계 수학계에 이름을 올렸다. 인터뷰 내용 중 일부를 옮기고자 한다. 가능하면 위의 링크를 직접 들어가서 읽어보길 권한다.

◇시인 꿈꾸며 고교 자퇴한 수포자

“제가 사람들하고 말하기를 굉장히 좋아해요. 게다가 10년 넘게 외국에 있으니 한국 사람과 얘기할 일이 굉장히 적어요. 이런 대화가 굉장히 즐겁답니다.” 화면 속 허 교수가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골방에 갇혀 혼자만의 세계에 몰두하는 영화 속 천재 수학자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다.

-‘굉장히’라는 부사를 습관적으로 많이 쓰시네요.

“앗! 그게 굉, 장, 히 아쉬운 점이에요. 어휘가 파도처럼 밀려들어 왔다 나가야 유지되는데 몸에서 자꾸 한국어가 빠져나갑니다. 정교한 어휘 선택을 못 하는 거죠. 언어를 냉동 상태로 보존할 수도 없고.” 수학자가 아니라 언어학자와 대화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시인을 꿈꿨다던데요?

“중고등학교 때 시에 빠졌어요. 특히 기형도 시인의 작품을 좋아했죠. 시를 읽으면 일상 대화에선 느낄 수 없는 다른 종류의 소통을 느낄 수 있었어요. 시적 표현이 모호해서 저자가 의도한 바를 명확히 알기 힘들었지만, 그것 때문에 오히려 깊은 유대와 공감대를 갖게 되는 특별한 경험을 몇 번 했거든요.”

-시인을 꿈꾼 수학자. 언뜻 연결이 안 됩니다.

“알고 보면 공통점이 많아요. 시는 어떻게 보면 모순적인 표현 양식입니다. 표현하기 어려운 것을 언어로 소통하려는 시도니까요. 그래서 시적 모호성이 생기죠. 수학은 땅으로 끌어내리기 어려운 추상적 개념을 수와 논리로 표현해 공유하는 거고요. 둘 다 대상을 고도로 함축해 강력한 상징을 만들죠.”

-어릴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습니까?

“전혀요. 사립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 적응 못 해 동네 초등학교로 전학했어요. 고등학교 땐 시 쓴다고 학교를 관뒀어요. 학교 다닐 시간에 시 쓰면 금방 등단할 줄 알았죠. 중2병도 아니고 고1병을 심하게 앓았어요. 결론은 허송세월. 학교 안 가고 매일 교문 앞에서 하교하는 친구들 기다렸다가 PC방에 갔답니다.”

-수학을 싫어했단 얘긴가요.

“처음엔 수학이 재미있었지만, 입시와 연관돼 있어 수학의 기쁨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중3 때 경시 대회 나가볼까, 과학고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지금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하시더군요. ‘나는 수학 못하는 아이’라고 생각해 버리게 됐어요. 수학자가 된 지금 돌이켜 보면 말이 안 되는 얘기예요. 한국 사람들은 ‘뭘 하기에 늦었다’는 말을 너무 많이, 가혹하게 해요.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어떤 일이라도 시작하기에 늦은 일은 없지 않을까요?”

위에서처럼 한국 사람들은 너무나 단정적이다. 어떤 기준점을 두고 된다 안된다를 너무 강하게 선을 긋는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다. 내 나이 고작 스물일곱이나 여덟이었는데 회사 길 건너편에 클래식 음악학원이 있어서 점심 시간에 그곳에 들려서 원장과 이야기를 나눴었다. 내가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손이 굳어 있어서 너무 늦었으니 첼로를 배워 보라고 했다. 내가 한 달치 월급을 털어서 삼풍백화점에서 첼로를 사거 갔더니 학원은 문을 닫고 없어졌다. 남의 미래를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만일에 그 나이에 바이올린을 시작했다면 지금은 30년 넘은 경험을 가진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혹시 아는가? 어느 국제 콩쿨에서 입상이라도 했을지.

-당신의 어린 시절은 어떤 함수에 있었는지요.

“운이 좋은 편이라 생각해요. 부모님이 바빠도 매일 저녁 같이 산책하고 주말엔 영화 보러 가주셨어요. 예측 가능한 일상을 만들어 주셨기에 심리적 안정감을 가질 수 있었어요. 그 덕에 수학처럼 추상적인 학문에 관심 둘 수 있었다고 봐요.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순수 학문을 하기가 아무래도 어려워요.”

허 교수는 한 살, 여덟 살 두 아이를 둔 아빠다. 부모님처럼 아이들에게 예측 가능한 일상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아내는 서울대 수학과 대학원 동창. 처음엔 부부가 함께 수학자의 길을 걸었지만 아이가 생기면서 아내는 공부를 접었다. “다 저의 불성실한 육아 참여 탓”이라며 허 교수가 웃었다.

수학자의 자녀 수학 교육은 어떨까. “저희 애는 수학에 영 관심이 없어요. 대신 K팝 천재 같아요. 드럼 비트 한 번만 들어도 BTS 노래인지, 블랙핑크 노래인지 다 맞힌다니까요!”

-2009년 해외 대학 박사과정에 진학하려고 12곳에 지원서를 냈는데 미국 일리노이대 한 곳만 됐다고요?

“당연한 결과였어요. 학부를 6년이나 다녔고 성적도 안 좋았으니. 그나마 히로나카 교수님 추천서 덕에 일리노이대에서 도박하는 심정으로 뽑아준 것 같아요(웃음).” 도박 결과는 잭팟이었다. 박사과정 첫 해 리드 추측을 해결했다. 한 해 전 그를 떨어뜨렸지만 다시 러브콜을 보낸 미시간대로 옮겨 박사 학위를 마쳤다.

학부 점수가 형편 없었으니 공부하고 싶은 박사 과정 대학원에서 받아줄리 없었을 것이다. 일리노이대학은 비교적 평범한 대학인데 그곳에서 박사과정 중 난제를 해결하면서 한 해 전에 그를 받아 주지 않았던 미시간대학에서 러브콜을 보냈다고 했다. 나는 그 대학말고도 그를 떨어뜨린 나머지 대학들도 그를 찾아와서 모셔갔어야 하지 않나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수학의 풀지 못한 수수께끼를 푼 것만해도 대단한 것이다.

◇수학 매력? 정답 있으니 언성 높일 필요 없어

-한국처럼 전 국민이 수학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나라도 없어 보입니다.

“수학이 문제가 아니라 한국 입시 구조가 문제예요. 수학 스트레스 없앨 방법은 아주 간단해요. 수학자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내년부터 입시에 수학을 안 넣겠다고 하면 바로 해결되지 않을까요(웃음).”

위에서 말한, 한국의 수학 문제 해결로 그가 제시한 농담은 핵심을 찌른 것이다. 수학, 그것도 수준을 엄청 높여 놓고 입시에서 배점을 엄청 높여 놓으면, 수학을 잘하는 자와 수학을 못하자(실제로는 수학 포기자)는 자로 능력이 갈려서 인생이 갈리는 게 정상인가? 그냥 누구나 열심히 공부하면 95점, 100점을 맞을 수 있도록 하고 배점도 일반 과목처럼 해 놓으면 수학에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고 수학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극적으로 줄어들어서 허준이 교수처럼 어쩌면 나중에 엄청난 수학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수학이 쉬워 보이면 이과에 지원하는 학생들도 엄청 많을 것이며 그러면 기술강국을 이끌 인재풀도 넉넉하니 얼마나 좋겠는가?

-요즘도 시를 쓰나요?

“쓰지는 않지만 많이 읽습니다. 최근엔 시인 데이비드 화이트의 작품을 즐겨 읽어요. 그의 산문 ‘위로’는 특히 강추! 언어를 굉장히 정교하게 사용해 곱씹으며 읽는 즐거움이 있어요.”

-인문학적 소양이 많아 보입니다.

“수학은 인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천문학, 물리학 등은 자연이 만든 대상을 연구하는데 수학은 사람이 만들어 낸 걸 연구해요. 그런 면에서 철학, 문학과 오히려 결이 비슷하죠.”

허준이 교수의 필드상 수상 뉴스를 접하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한국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나는 중학교 때 수학이 생각난다. 우리를 담당한 분이 교감 선생님이었는지 은퇴를 앞둔 분이었는데 늘 성냥개피를 입에 넣어 깨물면서 수업을 하셨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성냥의 붉은 황이 침에 녹아서 입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묘미가 있었다. 그 분은 자신이 암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자랑하기 위해서 칠판 좌측 끝에서 우측 밑까지 문제를 죽 풀어 놓곤 했다. 한마디로 수학이라는 개념이 무엇인지보다는 어떻게 푸는지를 가르칠 뿐이었다. 불행하게도 나는 고등학교 문턱을 가 본적이 없으므로 중학교 때 배운 방식으로 고등학교 수학을 독학했다. 그러다가 종로학원에 들어가서 제대로 된 수학 선생들을 만났다. 나를 담당한 수학 선생은 총 3명이었는데 가르치는 분야가 다 달랐다. 나는 인문계이므로 그나마 3명이지 아마도 이공계 반 학생들은 담당 수학 교사가 더 많았을 것이다. 나는 그 중에 논리 부분을 담당하셨던 노신사가 생각난다. 그 당시의 내 기억에 그 분은 칠십대 중간 정도 되셨던 것 같다. 명제와 논증을 다루는 그 부분은 그야말로 명징한 철학 수업이었다. 명제의 참과 거짓을 논증하는 것은 아름다운 과정을 거쳐 증명되곤 했다. 그때 나는 하마터면 논리학을 다루는 학문이 좋아서 수학을 전공하거나 철학을 전공할 뻔했다.

나처럼 많은 사람들이 학교에서 선생을 잘못 만나 인생이 틀어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수십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런 문제는 학교 현장에서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 학교 공부는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이해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런 식으로 조금씩 한단계씩 나아가는 것이 인생이며 참으로 소중한 순간들이어야 한다. 아무 것도 모르는 청춘들을 좌절시키고 굴복시킬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업데이트: 2022년 7월 6일

이 글을 쓰면서 꼭 언급하고 싶은 글이 있었는데 찾을 수가 없어서 그냥 지나갔다. 아침을 먹고 검색을 다시 해 보니 내가 찾던 글이 나타났다. 여기저기에서 이 사람이 쓴 글을 아무런 출처도 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유학원에서부터 개인의 글에 이르기까지 이런저런 글에서 말이다. 자신의 글이 아니면 반드시 그 출처를 명확하게 제시해 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문제 의식이 없는 것은 심각하다. 여기저기에 해당 글이 게재된 것을 발견했는데 어느 것이 원본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내용도 마음대로 뜯어 고친 글도 있었다. 출처가 없으면 몇 년도에 쓴 글인지 알 수 없다. 그리고 내용이 조작된 것인지도 확인할 길이 없다. 그래서 나는 끈질기게 검색을 한 끝에 드디어 원 출처를 확인했다. 한국과학기술인연합에 2003년 7월 17일에 올랐던 글이다. 글쓴이는 우울모드로 제목은 미국유명대와 한국대학에 대한 시각 – 上 (부럽다MIT)이다. 우울모드라는 닉네임 때문에 나는 하마터면 2005년에 우울증으로 보스턴에서 목숨을 끊은 양신규 박사가 생각났다. 그도 서울대 물리학과를 나와 한국의 대기업에서 근무하다가 MIT에서 석사와 박사를 한 후 뉴욕경영대학원 교수 겸 MIT 방문교수를 하던 때였다.

미국유명대와 한국대학에 대한 시각

글쓴이 우울모드  등록일 2003-07-17 00:22 조회 3,269회 추천 1건 댓글 12건

미국유명대와 한국대학에 대한 시각 – 上 (부럽다MIT)

저는 6년전 MIT에 유학와서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미국에서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처음 1년 이 곳에서 공부할때 저는 제가 한국에서 대학교육을 받은데 약간의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주위의 많은 한국 유학생들이 서울대 과 수석 또는 서울대 전체 수석도 있고 한국 대학원생의 80% 이상이 서울대 출신이니까 미국 학생들을 바라 보면서 그래 너희가 얼마나 잘났나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하던 대로 이곳에서도 한국 학생들이 시험은 아주 잘 보는 편입니다. 특히 한국 중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수학의 수준이 미국의 그것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공대생들로서는 그 덕을 많이 보는 편이죠. 시험 성적으로 치자면 한국유학생들은 상당히 상위권에 속합니다. 물론 그 와중에 한국 유학생들 사이에서 족보를 교환하면서 까지 공부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한번은 제가 미국인 학생에게 족보에 대한 의견을 슬쩍 떠본일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정색을 하면서 자기가 얼마나 배우느냐가 중요하지 cheating 을 해서 성적을 잘 받으면 무얼하느냐고 해서 제가 무안해진 적이 있습니다. (물론 미국인이라고 해서 다 정직하게 시험을 보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어느덧 시험에만 열중을 하고 나니 1년이 금방 지나가 버렸습니다. 이제 research 도 시작했고 어떤 방향으로 박사과정 research 를 해나가야 할지를 지도교수와 상의해 정할 때가 왔습니다. 물론 명문대이니 만큼 교수진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습니다. 한국에서 교수님들이 외국 원서를 번역하라고 학생들한테 시킬때 도데체 어떤 사람들이 이런 책을 쓸 수 있을까 의아하게 생각하던 바로 그 저자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체험이었습니다. 과연 그런 사람들은 다르더군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 과연 천재라는 것은 이런 사람들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사람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앞에 존경심이 저절로 생겨났습니다. 그동안 제가 갖고 있던 미스테리가 풀렸습니다. 그동안 교과서에서만 보던 바로 그 신기하기만 하던 이론들을 만들어내고 노벨상도 타고 하는 사람들, 그런정도가 되려면 이런 정도의 천재가 되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걱정이 되었습니다. 과연 내가 얼마나 잘 할 수 있을까? 도데체 비밀이 무엇일까? 저런 사람들은 어떤 교육을 받았을까? 물론 지금까지 수업도 착실히 듣고 시험도 그런대로 잘보고 해서 어느정도 유학생활에 자신감은 있었지만 이 부분에는 영 자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세계제일의 공학대학에서 이 정도 교수는 갖추고 있는게 당연하고 나와는 다른 차원의 사람들이다라는 식으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주위에 있는 미국인 학생들을 보면서 그래도 내가 한국에서 어려운 교육도 받았고 (대학교 수학도 한국이 더 수준이 높습니다) 저 아이들보다는 잘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소름이 오싹 돋는 일이 자꾸 생겼습니다. 하나 둘씩 주위에 있던 몇몇 미국인 학생들이 점점 두각을 나타내면서 점점 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벽에 부딪치면 새로운 길을 스스로 파헤쳐 나가는 등 저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초기에 제가 미분기하학이란 이런것이야라고 설명해주던 미국애가 이제는 제가 알아듣지 못하는 이론을 제게 설명해 줍니다. 뭐 그럴수도 있지라고 처음에는 생각 했습니다. 자기한테 맞는 분야를 잘 정했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더 많은 그런 케이스를 보면서 또 그들이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이들중 몇명이 내가 천재라고 생각하던 그런 교수님들 처럼 되는 것이 아닌가. 바로 그랬습니다. 바로 그런 학생들이 그런 교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왠지 슬퍼지더군요.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 유학생에게 넘을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장벽이 있음을 느꼈습니다. 우리나라 인구수로 따지자면 이미 노벨상 수상자가 여러명 나왔어야 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교육열로 보면 이미 세계적 수준의 과학기술자가 전세계에서 활약하고 있어야 할 시점에서 왜 한국에서 일류 교육을 받은 한국 유학생 들이 MIT 에서 기가 죽어 지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학교 도서관에서 책만 읽어서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더 지나고 미국 친구도 사귀고 미국 사람들의 생활을 보면서 차츰 차츰 미국에서의 교육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일단 갓난아기때 부터 한국과 미국의 교육이 달라 지더군요. 우리나라에서는 부모가 감정적으로 때로는 분에 못이겨 매를 드는 반면, 이곳에서는 모든것이 논리 정연하게 말로 설명이 되었습니다. 아이가 왜 안되느냐고 물어보면 그것은 이렇고 저래서 그렇다고 꼬치꼬치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투정을 부리면 온갖 기발한 계략으로 아이의 관심을 돌립니다. 부모가 항상 아이에게 말을 시키려 하고 자기 자신들이 그들의 부모로 부터 물려받은 삶의 지혜를 전해주려 노력합니다. 거의 대화가 없는 우리나라 가정과 꽤나 대조적 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아이가 있지만 도저히 그들처럼 할 수 없습니다. 그런식으로 대대로 물려받은 몸에 밴 경험이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과 저에겐 없기 때문입니다. 과연 이렇게 시작이 다른데 미국에서 애를 잘 키울 수 있을까 걱정이 듭니다.

그들이 학교에 가면 차이는 더 벌어집니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암기력과 약간의 사고력, 이해력의 계발에 중점을 두는 동안, 이곳에서는 창의력, 상상력, 사회성 등을 키워나갑니다. 바로 이런것들이 거름이 되어 아까와 같은 천재들이 대학원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학생들이 남들이 만들어놓은 포장된 지식을 주입받는 동안, 이 곳 학생들은 생각하는 법을 배웁니다. 자발적 참여 및 토론에 의한 학습, 스스로 탐구하는 학습, 작문력, 발표력, 논리적 사고가 중요시 되는 교육을 받고 이들은 비록 미분 적분에 대하여 우리보다 늦게 배울망정 인생에서 창의력이 극대화되는 20대가 되면 어렸을때 생각하는 법을 배웠기에 스폰지처럼 지식을 습득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나갑니다.

이곳에 와서 한가지 더 놀란것은 미국사람들의 호기심 입니다. 새로운 것을 알고 싶어 하는 열정이 우리나라 사람의 몇배는 되어 보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금속활자, 물시계, 해시계 등을 발명해 놓고도 더 발전 시키지않고 있는 동안, 서양에서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였고 이를 발전시켜 결국 오늘날의 과학기술로 바꾸어놓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치하다고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을 automaton (자동 인형 – 태엽 등의 힘으로 스스로 정해진 순서에 따라 움직임) 이 유럽에서는 이미 수백년 전에 유행하여 자동으로 연주되는 피아노, 날개짓하며 헤엄치는 백조, 글씨쓰는 인형등 갖가지 기발한 발명품이 쏟아져 나왔고 바로 이것으로 부터 발전하여 나온것이 자동으로 계산하는 기계, 즉 컴퓨터입니다. 제가 미국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여 조금이라도 신기한 것을 보여주면 이것은 어떻게 만들었느냐 무슨 원리로 동작하느냐는 등 질문을 쏟아 붓습니다. 심지어 하수구를 고치러 온 미국사람도 똑같은 관심을 보이면서 돈을 줄테니 자기 아들을 위해 하나 만들어달라고 조르던 적도 있습니다. 반면 MIT의 박사과정 한국 유학생들은 시선이 1초 이상 머무르지 않고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술만 마십니다. 과연 우리가 세계를 주도해 나가는 과학기술 수준을 이룩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단지 선진국이 되기 위해 또는 노벨상을 받기 위해 과학기술을 하기 싫지만 억지로 연구하는 동안 이곳에서는 너무나 좋아서 신기해서 알고 싶어서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좋아서 하는 사람들의 열정은 절대 따라갈 수 없습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20년 전에 우울모드님이 남긴 이 글은 한국 교육과 선진 교육 국가들의 차이점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우울모드님이 설명하진 않았지만, 아마도 그는 아마도 서울대 학부에서도 수학을 전공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쩌면 그 대학에서 수학으로 석사 과정도 마쳤을지도 모른다. 웬만해서는 6년 만에 석사와 박사 과정을 모두 마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는 한국에서 석사까지 한국식으로 공부를 하고 MIT에서 공부할 때, 그의 말대로 처음에는 의기양양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처음에는 자신보다 못하던 미국 학생들이 자신을 앞서나가는 것을 체험하면서 한국 교육의 문제를 뼈아프게 몸으로 체험한 것이다.

주위에 있는 미국인 학생들을 보면서 그래도 내가 한국에서 어려운 교육도 받았고 (대학교 수학도 한국이 더 수준이 높습니다) 저 아이들보다는 잘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소름이 오싹 돋는 일이 자꾸 생겼습니다. 하나 둘씩 주위에 있던 몇몇 미국인 학생들이 점점 두각을 나타내면서 점점 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벽에 부딪치면 새로운 길을 스스로 파헤쳐 나가는 등 저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초기에 제가 미분기하학이란 이런것이야라고 설명해주던 미국애가 이제는 제가 알아듣지 못하는 이론을 제게 설명해 줍니다. 뭐 그럴수도 있지라고 처음에는 생각 했습니다. 자기한테 맞는 분야를 잘 정했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더 많은 그런 케이스를 보면서 또 그들이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이들중 몇명이 내가 천재라고 생각하던 그런 교수님들 처럼 되는 것이 아닌가. 바로 그랬습니다. 바로 그런 학생들이 그런 교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왠지 슬퍼지더군요.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 유학생에게 넘을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장벽이 있음을 느꼈습니다. 우리나라 인구수로 따지자면 이미 노벨상 수상자가 여러명 나왔어야 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교육열로 보면 이미 세계적 수준의 과학기술자가 전세계에서 활약하고 있어야 할 시점에서 왜 한국에서 일류 교육을 받은 한국 유학생 들이 MIT 에서 기가 죽어 지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학교 도서관에서 책만 읽어서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더 지나고 미국 친구도 사귀고 미국 사람들의 생활을 보면서 차츰 차츰 미국에서의 교육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마지막에 “이곳에 와서 한가지 더 놀란것은 미국사람들의 호기심 입니다.”라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경험하고 있는 내용이다. 손님을 우리 집에 초대해서 왔을 때 이곳에서 자란 사람들은 바로 소파 등의 자리에 안내해도 선뜻 앉으려 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거실 등을 돌아다니면서 집에 놓인 가구나 벽에 걸린 사진이나 미술품을 유심히 살핀다. 그리고 궁금해지면 질문부터 한다. 반면에 한국 손님이 오면, 의자에 앉으라고 안내를 하면 바로 앉는다. 그리고 화장실에 갈 때와 떠날 때를 제외하면 일어나지 않는다. 우울모드님은 “반면 MIT의 박사과정 한국 유학생들은 시선이 1초 이상 머무르지 않고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술만 마십니다.”라고 말한다. 미국 사람들의 호기심은 정말 한국 사람들과 다르다. 이것도 학교 교육에서 결과만 목표로 하는 것에 기인하지 않을까? ‘과정이 뭐가 중요한가? 결과가 좋아야지’하는 마음에 우리들에게 인처럼 박혀 있는 것은 아닐까?